부자들의 비밀- 부불삼대(富不三代) 1부
부불삼대( 富不三代), 부자가 3대를 넘기기가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계 역사를 통틀어 300년 이상 부를 유지한 가문은 매우 드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도 200여 년밖에 부를 유지하지 못했죠. 그런데 경주 최부잣집은 9대에 걸쳐 진사( 進士)를 배출하고 12대 동안 연이어 만석을 모았습니다. 어떻게 그들은 300년 동안이나 부를 유지하고 가문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최부잣집이 가훈처럼 여기며 자손 대대로 가르친 여섯 가지 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1. 벼슬은 진사( 進士 ) 이상은 하지 말라
우선, 진사( 進士)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은 크게 문과, 무과, 잡과로 나누어지는데, 문과는 대과( 大科)와 소과( 小科)로 나누어지나 흔히 문과, 생원시·진사시로 일컫어집니다. 진사시에 합격한 진사는 생원과 더불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습니다.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문과(대과)에 응시,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가는 것이 당시 유생들이 밟는 정상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그러하니 경주 최 씨 집안은 진사에서 문과(대과)로 나아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진사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면, 진사는 무직의 사류였지만 면역의 특전을 받고 때에 따라서는 참봉이나 교도 등의 관직에도 나아갈 수 있었고, 지방사회에서 여러 가지 기구를 조직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향교와 서원 유생의 명부[儒案, 靑衿錄]를 장악하고 향촌을 이끌어 가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따라서 진사는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는 의미를 넘어 지방사회에서 유자로서 행세할 수 있는 자격증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진사의 자격으로 지방민의 교화에 나서고, 백성에 대한 통제를 거들었으며, 그 밖에도 조세 수납, 군역 책성, 수리시설의 관리와 이용, 수령 등의 진퇴 등의 일에 영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때로는 지방의 유력자로 지방관과 결탁하여 이권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해도 진사가 되고자 하였으며, 조선 후기로 올수록 진사는 더욱 양산되었습니다.
벼슬이 좋다 한들 새옹지마라 높이 오른 새가 눈에 잘 띄기는 하나 바람을 많이 타는 법이지요. 높은 자리까지 벼슬자리에 오른 집안이 한 번의 실수로 멸문하는 경우가 적지는 않았으니 탁월한 가훈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벼슬과 권력에 욕심을 버리고 선비 정신을 지키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길고 얇게, 오래 살아남는 것을 중시한 것 같습니다.
2.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만석은 일만 섬을 뜻하지만, 무척 많은 양의 쌀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실제로 일만 섬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며 만석이상 쌓았다는 얘기는 이미 그 마을에서는 쌀부자일 테고 더 이상의 욕심은 금물임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과하게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것을 후손들께 전달한 것이 아닐까요? 재물에 탐내지 말고 넘치면 남들을 도와주라고 돌려서 말하는 듯합니다. 현실적으로 만석이상 모으면 관리 차원에서도 손이 많이 가고 쌀이 썩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한, 소작인들이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그에 대한 소작료를 수확량의 7~8할 정도 지불해야 했는데 최부잣집은 소작료를 받을 때, 만석 이상 모을 수 없기에 소작료를 어느 정도 낮추어 받을 수 있고, 소작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너도나도 땅을 빌리려고 할 테니 최부잣집이 땅을 더 많이 갖기를 바라게 됩니다. 서로 상생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죠.
3.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과객이란 지나가는 나그네를 말하는데, 저는 나그네에게 후하게 대접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통신이 발달하여 전화기, 휴대폰, 컴퓨터, 위성 방송 등 넘쳐나는 정보를 시시각각 받아볼 수 있을 테지만, 조선 시대에는 자필로 쓴 편지를 주고받던 시대였습니다. 아니면 직접 말에서 말로 전달을 받아야 했지요. 그래서 일까요? 조선시대에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양반집이나 부잣집 사랑채에 며칠씩 머물다 가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런데 최부잣집은 유독 과객을 후하게 대접했던 것이죠. 그 집은 한 해 소작 수입이 3천 석 정도인데 그중 1/3이나 되는 1천 석을 과객 접대에 섰고, 그래서인지 과객이 많이 머무를 때는 그 수가 100명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밤을 지새우고 떠나는 과객에게는 과메기 한 손과 하루분의 양식 그리고 노자도 몇 푼 쥐어 보냈습니다. 그러면 과객들은 공짜로 재워 주고 먹여 준 최부잣집에 고마움을 느끼며 자신이 전국 각지를 떠돌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아낌없이 털어놓곤 했습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여행이 어려웠던 당시, 과객들이야말로 전국의 모든 새로운 정보를 시시각각으로 나르는 정보통이었던 셈이죠. 덕분에 최부잣집은 굳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이 있는 법이죠. 만약 최부잣집이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지 않았다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오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최부잣집은 전국 각지의 정보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정보의 소중함을 진즉에 통달한 혜안에 탄복할 뿐입니다. 그 정보들이 오랑캐의 침입일 수도 있고(왜의 침입), 자연재해일 수도 있으며(잦은 지진) 앞날을 내다보는 도인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미래는 알 수 없고 인간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에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부자들은 남들에게 후하게 대접한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돈을 잘 쓰지 않을지언정 남들에게는 호의를 베풀고 식사등을 잘 산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답하고 매 순간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받았으면 성의 표시를 하려는 행동은 별것 아닐 수 있지만 그런 행동들이 하나하나 모여 부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진심이 담긴 말과 행동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죠.
1부는 여기서 마치고 2부에서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부 내용입니다.↓ ↓ ↓ ↓ ↓ ↓
부자들의 비밀- 부불삼대(富不三代) 2부
1부 내용은 아래에 있으니 클릭해서 확인해 주세요. 부자들의 비밀- 부불삼대(富不三代) 1부 부불삼대( 富不三代), 부자가 3대를 넘기기가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계 역사를 통틀어 300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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