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적금만 하다가는 가난해지는 시대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통장들을 가방에 보관하시고 금고는 따로 없어서 장롱 한쪽에 보관하시곤 했지요. 통장도 여러 가지라서 적금 통장, 예금 통장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버릇처럼 '주식 같은 건 하다가 거덜 난다'며 말씀하시곤 했고요. 어릴 때 그런 기억들이 있어서인지 커서도 투자에 대한 관심이 적고 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 금융시장이 어땠을지에 대해서 알아보고 현시대에는 과연 맞는 방법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장 금리와 물가
1980년대 우리나라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12~13%였습니다. 그래서 정기예금에 1,000만 원을 1년 동안 넣어 두기만 해도 이자가 최소 120만 원이 더 붙곤 했지요. 1억 원을 넣어두면 1,200만 원, 10억을 넣어 두면 1억 2천만 원을 이자로 벌 수 있었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따로 재테크를 할 필요가 없었죠. 그저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은행에 저축만 하면 이자가 붙어서 그 돈이 점점 목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예금 금리가 10%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020년 코로나19 직후에는 0.5%까지도 떨어졌습니다. 1000만 원을 1년 동안 은행에 맡겨 두어도 이자가 5만 원밖에 안 붙는 상황이 된 것이죠. 현재는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3~5% 금리 위주로 이자를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괜찮은 상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은행 금리 말고도 물가가 있기 때문이죠. 코로나 이후로 물가가 더욱 올라서 시장 금리를 뛰어넘은 지 오래입니다.
월급은 4% 올랐는데 물가는 6% 올랐다고 가정해 보면, 실제로는 작년보다 더 적게 번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같은 물건을 사는 데도 돈이 더 많이 들어서 지출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죠. 마트에서 장을 보면 물건을 몇 개 안 샀다고 느끼는데 10만 원이 넘게 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면 월급은 분명 올랐는데 그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갑자기 팍팍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저축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들고 돈을 모으기도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문화생활과 취미 활동에도 제약이 생겨 삶의 질이 떨어지고, 때때로 자유를 누리던 삶에 불행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경기 침체로 연봉을 2~3%만 올리거나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연봉을 동결시키는 사례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연봉이 동결될 경우, 물가 6%는 고스란히 가계 경제에 있어 빨간불이 들어옵니다. 소득은 오르지 않았는데 물가가 높아 지출이 많아지면서 소비가 늘어나서 가계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집을 사거나 전세금을 올리는 과정에서 대출을 받은 게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2021년까지만 해도 금리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고 대출이자는 2.5%였는데 지금은 금리가 3.5%로 오른 데다가 대출이자는 7%까지 치솟았다가 4~5%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1년에 비해서는 여전히 대출이자가 2배 정도 높아 4~5억 원을 대출받았다면 월 대출이자만 100만 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2022년부터 시작된 고물가, 고금리로 인한 '인플레이션(Inflation)'이 끝날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장기화될 조짐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돈을 지키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 가진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지출은 많아져서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죠.
인플레이션과 헷지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상승하는 경제 현상을 말합니다.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보면, 20년 전에는 겨울 코트를 사려고 하면 25~30만 원 정도면 괜찮은 상품을 살 수 있었는데 옷 값이 점점 오르더니 이제는 겨울 코트를 사려면 40~50만 원 정도는 줘야 살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더 가격이 나가는 상품들도 많고요. 이런 현상은 화폐량을 늘리면서 그만큼 화폐가치가 떨어져서 동일한 제품이라도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통화량이 많아지면서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그로 인해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물가가 오른 만큼 월급을 올려주면 해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 순순히 시장의 물가를 책임지면서까지 임직원의 복지를 챙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회사가 있다 하더라도 너도나도 입사하려고 할 테고 경쟁도 치열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현실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들 예상하시겠지만 투자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헷지(Hedge)'라는 용어를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울타리'라는 뜻인데 주인의 소유물을 지키는 울타라처럼 '투자가의 자산을 지킨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헷지는 위험 요인들로 인해 자산의 변동이 생길 때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위 혹은 투자를 의미합니다. 만약, 물가 인상률이 5%이면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펀드나 주식 등을 해서 5% 이상 수익을 낸다고 하면, 우리는 본인의 자산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헷지를 통해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는 것이죠.
경제 공부를 하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화폐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릴 적 초코파이나 라면을 떠올려 보세요. 그때는 얼마였고 지금은 얼마인지를 따져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20년 전의 1억 원과 현재의 1억 원의 값어치는 어떤지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금융 문맹
글을 모르는 사람을 '문맹'이라고 부르듯 돈을 모르는 사람을 '금융 문맹'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금융 문맹이 의외로 많다는 말이죠.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돈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해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현재 세대와 경제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금융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돈의 흐름을 읽고, 경제 공부를 하는 것은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저물가 고성장'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취업의 문턱이 그리 높지 않았고, 어디든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면 연봉이 올라갔고, 예적금 금리가 높아 저축만 열심히 해도 직장 생활 15년 차쯤 되었을 때에는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삶을 이루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지는 않았다는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앞선 세대가 했던 방법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돈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돈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모은 돈의 가치가 점차 떨어져 돈에 쪼들리고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금융 문맹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잘 살 수 있고, 영어를 잘 못 해도 사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을 수 있지만, 금융 문맹은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 것입니다.